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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각장애인의 책 읽기를 바꾸다 : 연재를 시작하며

접근성

안녕하세요, 엔비전스입니다.

이제 더운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조금은 식상한 문구가 되었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독서의 계절을 맞아 특별한 기획물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디지털, 시각장애인의 책 읽기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시각장애인들의 독서에 관한 내용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책을 읽어 왔을까?

시각장애인들은 짐작하시겠지만, 활자로 인쇄된 인쇄물을 읽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책을 자유롭게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활자 인쇄물을 대체해 시각장애인들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상징 점자

아마도 시각장애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점자입니다. 점자는 마치 시각장애인의 상징과 같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점자는 기본적으로 한 칸에 6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점을 통해 문자를 표현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활자로 인쇄된 책을 다시 점자를 통해 인쇄하여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독서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점자와 점자정보단말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고해 주십시요. 그러나 점자가 마치 시각장애인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명백한 세 가지의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점자는 같은 분량의 활자로 인쇄된 책에 비해 엄청난 부피를 차지합니다. 이유는 같은 내용의 책을 활자 인쇄물과 점자 인쇄물로 비교하면 활자의 크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점자 인쇄물에 소모되는 종이가 4~5배에 이르게 됩니다. 게다가 종이에 점이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종이와 종이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간이 생기게 되어 그만큼의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점자책의 보관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닌데 돌출된 점이 강한 힘에 눌려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책 주변에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면 안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당시 교실의 한 켠에는 대략 교실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의 큰 책장이 있었습니다. 그 책장에는 대부분 두산동아에서 발행한 영한사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활자로 된 것은 묵직한 한 권의 사전이면 되었지만, 점자로 이루어진 같은 사전은 큰 책장의 대부분을 채울 만큼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PC와 스마트폰, 점자정보단말기가 학교에 비교적 널리 보급되어 이렇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점자 사전을 비치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사전 하나 구비하는 것 역시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점자로 책을 읽는 것의 두 번째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시각장애인 중에서 점자를 알고 있거나 책을 읽을 정도로 능숙하게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비율이 적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도에 시각장애가 찾아온 사람이라면 점자를 배워 책을 읽기 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아울러 점자가 능숙한 사람이라도 점자의 읽기 속도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이에 점자를 인쇄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해주는 점자단말기는 특성상 매우 고가의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한소네 점자정보단말기의 가격은 보통 5,000,000원을 넘습니다. 정부의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을 통해 점자정보단말기를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긴 하지만 수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보급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도 점자정보단말기 임대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학생과 일부 직장인을 대상으로 대상자가 제한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점자로 책을 읽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점자는 여전히 시각장애인에게 유용한 수단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 음악의 악보와 같이 많은 특수 기호가 들어간 종류의 콘텐츠는 점자가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자정보단말기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점자정보단말기를 PC 또는 모바일 장치와 연동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과거와는 달리 점역(일반 텍스트를 점자 체계로 옮기는 것)에 많은 노력이 들어갈 필요도 없으며 스크린리더의 음성과 점자를 선택해 가며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스크린리더와 점자를 통해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 다음 글에서 더 자세하게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로 책을 듣다: 오디오북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통해 책을 읽기도 하지만 오디오북 콘텐츠를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은 점자책에 비해 휴대도 쉬우며 콘텐츠에 맞는 플레이어를 큰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 시각장애인들이 오디오북 콘텐츠를 제공받는 곳은 주로 시각장애인 복지관입니다. 요즘은 스크린리더와 관련 기술들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한 면은 있지만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왔습니다.

복지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오디오북 콘텐츠를 제작 및 대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각장애인들이 복지관 웹사이트에 등록한 다음 오디오북을 스트리밍으로 읽는 방식이지만 얼마전 까지 카세트테이프와 CD에 녹음된 오디오북을 전화 또는 직접 복지관에 내방하여 대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하상장애인복지관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더 많은 오디오북 제작 이미지는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온소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낭독자의 목소리 특성에 맞는 도서 배정 및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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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낭독자가 녹음하는 모습입니다.

  2. 낭독 후 모니터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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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낭독 완료된 녹음을 들으면서 오독된부분, 누락 부분을 검수합니다.

  3. 녹음이 끝난 오디오북의 잡음제거 및 음질개선, 음향편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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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편집기기를 통해 잡음제거 및 음질개선,음향편집하는 모습입니다.

  4. 대출용 카세트 테이프에 대한 라벨 작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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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온소리 테이프라벨

  5. 카세트 테이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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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카세트 테이프 도서가 도서관 진열장에 진열되어있습니다

나아가 디지털 환경의 발전으로 오디오북을 쉽게 유통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복지관의 오디오북 대출 서비스 뿐만 아니라 국내 몇 개 유수 기업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오디오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SK텔레콤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함께 운영하는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서비스가 있으며, LG상남도서관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은 오디오북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E-Book 포맷인 데이지(DAISY) 도서도 제공합니다.

그 밖에 영어에 능숙한 시각장애인들은 애플의 iTunes Store에서 오디오북을 구매하거나 오디오북 전문 사이트인 ‘Audible.com’을 통해 오디오북을 읽습니다. 아마존의 오디오북 역시 이용합니다. 이렇게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독서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디오북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

오디오북은 접근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몇 가지 단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디오북으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의 콘텐츠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내용의 책은 오디오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과학이나, 수학 또는 복잡한 개념의 이해를 요구하는 사회과학이나 철학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디오북이 이러한 콘텐츠를 읽기 어려운 이유는 사용자가 특정 문단이나 단어, 문자 단위로 자유롭게 읽기 단위를 조절해가며 읽을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어려운 개념의 경우 한 문장이나 문단씩 천천히 읽어 가면서 내용을 파악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오디오북은 그런 부분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특정 단어나 어구를 정확히 선택하여 바로 검색할 수 없다는 점도 장애가 됩니다. 물론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책은 제작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디오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제작 과정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므로 인해 책의 종류와 양이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자의 요구에 맞게 책이 바로 제작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과 같이 디지털 도서의 시장이 큰 곳은 별도의 오디오북 시장이 형성되어 성우 지망생들이 연습삼아 오디오북을 제작하고 있는 등의 다양한 제작 방식이 있지만 한국은 과거에 비해 이용자 층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장 규모가 작아 많은 오디오북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시각장애인들은 대개 오디오북을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시각장애인 복지관 산하의 점자도서관이나,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이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도서관에서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책, 시각장애인의 독서에 혁명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점자책과 오디오북의 단점을 대부분 보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스크린리더를 통해 책을 읽는 것입니다. 스크린리더가 접근할 수 있는 전자책 형식은 E-Book의 포맷으로 많이 사용되는 EPUB와 접근성이 준수된 PDF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E-Book 포맷인 DAISY(Digital Talking Book)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국내 스크린리더 제조사인 XVision에서 XML 마크업과 Braille 바이너리 기반으로 제작된 VBF(Voice Braille Format)가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E-Book 포맷은 모두 디지털 암호화를 지원하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의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시각장애인들의 쾌적한 독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점자책과 오디오북에서 지적되었던 단점을 대부분 해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PC, 모바일 단말기를 오가며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점자와 스크린리더의 음성을 모두 사용하여 독서가 가능하며, DAISY에는 별도의 오디오북도 삽입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작이 큰 자원의 투입 없이 가능합니다.

DAISY 또는 VBF 도서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전용 도서관에서 제작하여 제공합니다. 그 외에 EPUB나 PDF로 제작된 도서는 iTunes Store나 Google Playbook에서 구매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마존 킨들 포맷인 AZW로도 독서가 가능합니다.

정리하자면 전자책은 시각장애인들의 쾌적한 독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으며, 저작권 문제와 적은 자원으로도 쉽게 책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전자책 시장이 작아 전자책 콘텐츠가 종이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점과 각 업체별로 전자책 포맷이 달라 호환성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접근성 역시 제대로 준수되고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구매하여 읽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전자책은 시각장애인들의 책 읽기에 있어 작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하나의 혁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글을 맺으며

IT 기술이 발전하고 대중화되면서 간혹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있다는 글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이 것이 꼭 옳기만 한 진술일까요? 오히려 IT 기술의 발전 때문에 책을 더 읽게 되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오셨다면 적어도 디지털 환경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원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큰 변화의 실마리를 준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 다음에 이어질 ‘디지털, 시각장애인의 책 읽기를 바꾸다’라는 주제의 다른 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자책 기술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해외에 구글과 애플, 아마존 등이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어떤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접근성을 준수한 EPUB를 만드는 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서 이 긴 연재가 마감됩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독서 환경 개선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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